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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의 마음인정/우등의 산문집

외갓집 또래 오촌

 외갓집 또래 오촌

                                                                                                  우등버스

  1985년 8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시절. 난 충북 충주 주덕 동산미 마을의 외갓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읍면 정거장마다 정차하는 완행 시외버스로 주덕읍내에 도착해 내려, 마을택시로 환승해 마을로 들어가서 외갓집에 도착했다. 그때 사과 과수원집이었던 외갓집에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와 현재도 생존해 계시는 외할머니, 이모들과 외삼촌들이 있었고 내 어머니하고 나이가 동갑인 늦둥이 태생인 작은 외할아버지와 오촌 동갑내기와 오촌 동생이 나의 가족이 오자, 잘 왔다고 반가워 맞이하였다. 나하고 비슷한 나이인 큰 오촌, 작은 오촌. 큰 오촌은 나하고 동갑내기였고, 작은 오촌은 나하고 두 살 동생 벌이였다. 촌수로는 엄마의 사촌동생이고 외조부모들의 조카이며, 나에게는 사촌 외삼촌 벌로 들어가는 친척들이었지만, 나이는 나하고 동갑, 동생 나이라서 아제라고 부르고 또래 벌인지

  "성헌아 성정아 땡헌아 땡정아!"

  반말로도 부르고 사촌같이 잘 어울렸다. 그날 외갓집에서 오촌들과 사과를 따고 키우는 소한테 볓집 먹이를 주고, 경운기도 타고, 외갓집 시골집 방에서 놀고, 시골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며, 재밌고 정든 추억을 보내면서 외갓집에서의 초등학교 때의 여름방학을 뜻깊네 보냈다. 세월이 지난 후 20살 중반이 된 2002년 추석명절 때, 오촌 또래들은 청주의 내 집에 놀러 왔고, 청주의 명소들을 관람 나들이하며 즐겁게 보냈다.

  "좋은 형제 사이여!"

  동갑인 큰 오촌은 마음씨가 착하고 동정이 보통 좋은 게 아니었고 성격이 나하고 비슷했는지 어울리는 궁합이 맞을뿐만 아니라, 인정이 의리가 보통 좋은게 아니었고, 동생 벌인 작은 오촌은 형인 큰 오촌보다 야무지고 당차고 대담한 성격의 핸섬 남이었다. 아제들과 나하고는 단짝 친구같이 잘 어울렸고 잘 통했고, 마치 친형 친동생 같은 형제같이 우애가 보통 넘치는 게 아니었다.

  "땡헌아 땡정아 아제들이 진짜 좋다."

  오촌들이 집에 놀러오면 시내 근처 놀이공원에 가서 즐기고, 볼거리 보고, 거기서 '멧돼지바비큐 구이'를 셋이서 같이 사먹으면서 즐겁게 보냈고, 내가 오촌집에 놀러가면 오촌들과 사이좋게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서 먹고 비디오 영화나 보면서, 오촌집에서의 형제의 우애의 행복은 가시지 않았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립다 아제들아."

  그러나 그 행복은 나중에는 오래 가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고 2020년 작은 외할아버지 집안은 재산이 도산이 돼어, 오촌 가족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고령 나이가 되어서 일터에 못 나가는 처지가 되었고, 작은 외할머니와 큰 오촌은 지병이 와 몸 앓이를 하고 있으며, 작은 오촌은 취업이 안돼 돈벌이를 못하고 실직자로 살고 있다. 그렇게 나하고 잘 지내고 추억 관계인 오촌 일가가 집안 파산이 나 사는 걸 보고, 차마 볼 수 없는 심정이고, 내가 눈이 까마져 버리는 절망감이 내 마음속에 아프게 파고들고 있다. 언제 오촌네를 찾아가서 위로의 손을 잡아주고 싶고 따뜻한 온정을 나누고 싶다.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그들이 그렇게 딱한 신세가 된 게 내 마음에 고통을 주게 한다. 경자년 지금 전염병 확산으로 사회가 불안해서 오촌네의 신변이 걱정된다. 오촌 가족들이 잘돼길 바라며 자판에 손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