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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의 마음인정/우등의 산문집

2007년 타이완의 추억(기행 수필)

펌사진입니다
펌사진입니다

 

2007년 타이완의 추억(기행 수필)

                                                  우등버스

 2007년 가을, 한국을 출발해 동중국해를 지나 4시간을 비행을 해, 대만의 타이베이의 도원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받고 가이드를 만나, 여행 설명을 듣고 관광버스에 승차했고, 관광버스를 보니까 1층이 짐칸, 2층이 객석인 2층 버스였다. 일본제 미즈비시 차종의 버스였고, 버스에 타 보니까 버스 탑이 높은지, 창밖의 풍경이 로우 앵글로 낮아 보였다. 버스는 출발했고, 공항을 떠나 타이베이 시내에 진입했고, 시내 거리를 보니까 오토바이가 수도 없이 많아, 대만에서 제일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오토바이라는 걸, 눈으로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내가 제일 애청하는 미국 범죄 스릴러 영화인, '스톤 콜드'의 브라더 후드 오토바이 갱단들이 타고 다니는 거를 연상케 해, 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청빈하게 산다는 걸 그곳에서 깨닫게 하였다. 대만 사람들도 국민성이 보통 강한 게 아니다. 대만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가 부패하고 사회가 많이 부패해서 차마 볼 수도 없지만, 대만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정치부패 사회 부패율이 적고, 청렴결백한 국가 인심에 윤리의식이 강해서, 사회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걸 여행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는 부러운 나라네 청빈한 나라!"

  타이베이 근처 식당에서 뷔폐 점심을 하고, 버스는 계속 달려 도착한 첫번째 여정 지는 대만의 호반 유원지인 '딴수이 유원지'. 버스에서 내려 나룻배를 타고 건너 맞은편 선착장에서 내려 사진 촬영했고, 거기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녔는데, 일반 자전거인지 자전거는 묵직하였다. 대만 사람들은 부품 비용이 비싼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전거를 타지 않고, 부품 값이 저렴한 림 브레이크 자전거를 탄다고 그러며, 거기의 나라 사람들은 산에서 산악자전거 라이딩을 못한다고 그런다. 산에 뱀들이 보통 많은 게 아니고, 독사에 물릴 위험이 있어서, 도로 라이딩을 많이 하고 그런다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자전거 동호인들은 자전거 유지비 비용에 너무 지나치게 투자를 안 한다고 그런다. 근검절약을 철저히 지키는 나라 국민들이다. 그쪽의 전문용 자전거 차종도 림 브레이크 차종이 많은 이유가 그 이유다.

 "사람들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들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 받아야 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욕심을 부려."

 선착장에서 배를 다시 타 처음에 탔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이동 해 거리를 달렸고, 날이 저물어 멀리 건너편에서 63 빌딩보다 더 높은 빌딩이 보이며, 몇 시간 지나가 그곳에 도착했다. 두 번째 여정 지는 타이베이의 최고층 빌딩인 '타이베이 101 타워'. 빌딩에 들어와 91층 전망대까지 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승강기의 문은 닫히고, 올라가는 속력도 일반 엘리베이터 보다 보통 빠른 게 아니다. 상승 하강 속력이 110Km/h로 일본에서 기종을 도입해 설치한 고성능 엘리베이터. 진짜 놀라워도 보통 놀라운 게 아니다. 몇 초 만에 전망대에 올라왔고 전망대를 보니까, 타이베이 시내가 전부 다 보였고, 야경이 보통 놀라운 게 아닌지 입이 딱 벌어지게 하였다. 전망대 중앙에 빌딩 타워를 받쳐주는 초대형 추를 보았는데, 시공 기술력과 자금도 보통 많이 들어간 게 아니라는 걸 그곳에서 느꼈다.

 "놀라워도 보통 놀라운 신기술이 아니네."

 전망대에서 내려와 대만의 샤브샤브 전문음식점에 도착해서 사브샤브 시식. 우리나라에서 먹는 샤브샤브 보다 기름이 진 게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이나라 사람들과 음식문화는 다른 게 있었고, 중화권 음식은 기름진 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것도 지장이 많은 편. 식사하고 1박을 할 호텔에 도착했고, 그 호텔에서 묵게 되, 호텔에서 잠잘 때 꿈속에서 가위를 눌렸다. 꿈속에 공포영화에 나오는 묘령의 여인(처녀 귀신)이 호텔방에 나오는 악몽을 꾸어, 그것 때문에 자다가 깨었고, 요즘 대만에서는 귀신 들리는 게 많다고 그런다. 그곳 나라 사람들은 도교를 많이 믿는다고 그럼과 동시에,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대만 어디를 가던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그런다. 그것 때문에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는다고 그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광 오면 기겁을 할거 같다. 잠을 다 자고 호텔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식사가 예전 중국 여행 때 시식한 식사보다, 나오는 식사가 더 맛깔 있게 나왔다. 열대 사과라 그러는 구아버를 먹었는데 사과보다 더 맛있었고, 우리나라 같이 조미료를 첨가해서, 중국에서 맛보는 것보다 맛은 궁합이 만점. 한국 사람들 입맛에는 딱 맞는 거다. 호텔을 출발해 우리 여행 일행은 대만의 철도 중앙역인 타이베이역에 도착했다. 열차 편으로 화련으로 가기 위해 온 거였다. 역에서 승차권을 끊고 개찰하고 역 플랫폼에서 대기하며 몇 분 기다리니까, '자강호'라는 명칭의 열차가 플랫폼에 서서히 들어왔다. 열차가 도착했는데 그 열차를 보니까, 차량이 우리나라 철도차량 하고 비스듬했었는데, 객실 내부가 우리나라에 다니는 새마을호 객실 내부와 비슷했고, 가이드에게 물어보니까 우리나라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제작해 수입해 도입을 한 한국산 열차 차량이었다. 대만의 열차 차량은 한국에서 수입한 차종과, 일본에서 수입한 차종이 많다고 그런다. 일행들은 열차에 다 타고 역을 출발. 승차감도 우리나라 열차 하고 비슷했고, 열차 승무원들도 우리나라 승무원들보다 서비스 수준도 더 친절했다. 몇 시간 가서 화련역에 도착했고, 역 광장에서 타이루거 협곡을 가는 협곡 전용 버스에 타 출발해, 대만에서 제일 험악한 그 협곡으로 향했다. 협곡에 진입했고 창가로 보니까 암릉이 웅장했고, 협곡을 흘러내리는 폭포도 거대했고, 마치 '몽유도원도'의 그린 산경과 같이 그림 속에 온 산경과 같았다.

 "아시아에서 콜로라도 협곡을 보는 것과 같구만."

 타이루거 협곡을 운전하는 협곡 버스 기사들은, 의무적으로 안전 운전교육을 철저히 받는다고 그러고 있고, 협곡 길이 너무 위험하고 운행 중에 추락사고가 많이 나, 그곳을 전문으로 운행하는 기사들을 따로 고용한다고 그런다. 미국의 콜로라도 협곡도 타이루거와 관광 사정이 같은 곳이라고 그런다. 타이루거 협곡도, 대만 초대 총통 '장졔스'의 아들 '장징궈' 전 총통이 협곡을 관광명소화 하려고, 어마어마한 자금과 많은 공사 인력을 투입해 대 공사를 해 개발을 해, 지금의 명소로 새롭게 탈바꿈했다고 그러고 있고, 협곡을 올라 종점지에서 버스에서 내려걸어, 협곡 사방이 온통 대리석과 옥으로 가득 찬 걸 보고, 대만이 세계적으로 대리석과 옥 산지라는 걸 그곳에서 알아냈다. 화련에 옥 대리석 광산이 많다고 그런다.

 "명품의 고향이구먼!"

 여기도 험악해도 보통 험악한 게 아니었고, 현기증이 약간 나는 거 같았다. 협곡을 다 둘러보고 버스에 다시 승차 해, 버스는 협곡을 내려와, 시내로 이동. 화련 시내의 대만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대리석 공장을 견학했고, 그곳의 제품 전시 판매장에서 옥 제품과 대리석 제품을 보며, '가격도 어마어마하겠다'라고 판단해 그 사람들이 구입해라고 그래도, 상술에 낭패를 볼 우려가 있어서, 난 그들의 호객 요구에 단호히 거절을 했다. 

 "어느 나라를 가던 호객 상술은 있구먼. 장사를 할 목적이구먼. 이런 상술에 속지 말자!"

 공장을 떠나 화련역에 다시 도착해, 열차에 다시 승차. 돌아갈 때의 열차는 올 때 열차보다 다른거였다. 인솔자에게 물어보더니 일본 '히타치'사에서 도입한 일반철도에 다니는 '퓨마호'라는 틸팅방식의 준고속열차로, 처음에 올때 탄 '자강호' 열차보다 속력이 더 빨랐고, 160Km/h의 속력에 우리나라의 고속버스를 타는 식으로 열차가 출렁했고, 승차감은 한국산 '자강호' 열차보다 별로 좋지 않았다. 일제 차종이 우리나라 차종보다 만족치는 못한 게 있는 거 같다. 열차에서 갖잠을 자고 몇 시간 지나서 타이베이 역에 도착을 했고, 역을 떠나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 한국에서 이주생활을 하고 돌아와 식당을 차린, 화교가 운영하는 대만의 다문화 식당인데, 공기밥에 불고기 정식이 나와서 반가웠고, 한국을 옹호하고 생각해 주는거에 고마워서 감사히 식사를 했다. 대만은 90년대, 그때의 한국 정부의 졸속 외교로 치욕적으로 국교를 단교했다. 그 당시의 한국의 외교 정치는 비참했다. 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한국이 단교 국이지만, 한국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아직까지도 많다. 한류 열풍이 대만에서도 불어 한국에 관심많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시절의 과오는 우리나라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2박을 하고 여행 세 번째 날, 버스를 다시 승차해 그날 첫 목적지인 야류로 향했다. 야류에 도착해 그곳의 해양공원에 도착을 해, 공원을 둘러보며 분위기가 제주도 해안가와 온 것과 비슷했고, 기이하고 예술적인 바위들과 그윽한 공원경을 한컷 하며 자연의 만드는 예술은 유별나도 보통 유별난 게 아니라는 것을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대만의 분위기도 우리나라 분위기하고 비슷한 풍경들이 보통 많은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대만 하고 우리나라하고 생활수준의 거의 비슷하구먼!"

 야류를 떠나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왔고, 중간에 고궁박물관과 충렬사를 들린 후, 마지막 여정 지는 타이베이의 번화가인 '서문정'거리와 '화이지에 시장'. 거리 분위기가 우리나라 '명동거리', '성안길', '오능정이' 거리하고 비슷한 분위기였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애들도, 우리나라 젊은 애들보다 개성이 더 있었다. 대만이 젊은 애들 보니까 옷차림이 화려하지 않고 청빈한 스타일의 소박한 옷차림이었고, 젊은 여자들도 겉 멋으로 야하고, 노출이 심한 미니스커트 차림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 단발머리와 스포츠머리를 한 애들이 천지에, 문신을 새기고, 코르셋이 심한 스타일의 옷차림은 대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만의 젊은 애들은 인성이 좋고, 요조숙녀가 많고 건전한 젊은 애들이 많았다. 거리의 상점들도 노래방, 호프집, 헌팅 포차, 유흥업소, 주류 음식점은 거의 없었고, 카페, 먹거리 집, 일반음식점, 분식집만 서문정 거리에 가득 차, 유흥이나 향락이 심한 우리나라 번화가 문화 하고는 대조적이었다. 대만의 문화를 보니까 국민성이 좋아도 보통 좋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문화는 잘못된 게 너무 많다. 대만의 젊은 애들한테, 우리나라 젊은 애들이 많이 본받아야 할게 많다. 서문정에서 저녁 식사하고 화이지에 야시장으로 가 시장을 둘러보고, 맞은편의 공원의 용산사 도교사원을 방문. 그곳에 가 보니까 참배하는 사람들이 많았었고, 대만 사람들은 도교의 신들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게 나한테는 이색적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현금과 과자, 빵, 식료품을 봉헌 시주를 하고, 시주한 금품은 용산사 공원의 노숙자들에게 나눠주고, 대만의 소외계층 취약계층들한테 헌납을 한다고 인솔자가 그렇게 설명한다. 대만 사람들도 사회에 헌납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런다.

 "남한테는 온정이 많구먼. 천사들이 많은 나라네."

용산사 공원도 우리나라 공원의 노숙자들이 많은 것 같이, 그곳의 공원도 한국의 공원과 같은 분위기다. 용산사 여정을 끝으로 대만 여정은 무사히 끝났고, 3박을 하고 마지막날 도원국제공항으로 돌아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으로 출국 수속을 받고 공항을 이륙해, 무사히 고국의 공항에 도착했다. 대만 여행은 내가 가본 해외여행지 중에서 여행 만족에 만점을 받았다. 현지 사람들도 양심적이였고, 낭패를 보는게 없었고, 여정의 보람이 많았던 기행이였다.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세월이 지나 어느덪 2021년, 대만의 분위기가 점점 안좋아지고 있다. 전염병의 안전지대 청정국이라고 부르던 대만에, 소강이 되는 줄만 알았던 코로나19 전염병이 재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대만도 안보 정세에 먹구름이 모여들고 있다. 이웃나라이자 동족국가인 중국의 침략 분위기가 감돌고 있고, 우리나라와 북한의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거와 비슷하게, 대만과 중국의 안보정세도 경색으로 불안해지고 있다.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걱정된다. 대만여행은 가 보고 싶어도 다시 가 보고 싶은 여행이다. 그때의 여행은 황금기 같은 여행이였다. 나에게는 추억에 오래 남을 여행이다..